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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와 상사뱀(공주설화 / 公主說話) 창건 설화더보기+


신라 선덕여왕 때 당나라 태종의 딸인 평양공주가 있었는데 청년이 그를 사랑하였다고 한다.

이에 황제는 일반 백성인 청년이 황제의 딸을 사랑한다는 노여움을 받아 처형되었다. 청년은 죽어서 뱀으로 변해 공주의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상사뱀의 이름은 이런 이유로 생기게 되었다). 황제는 점술가와 의원을 불러 치료를 부탁하였으나 모든 방법이 듣지 않았다. 또한 중국의 여러 사찰을 돌며 부처님께 빌어 보았으나 효험이 없자 신라에서 온 스 님에게 말을 듣고 신라의 산하를 두루 다녔다.
그렇게 다니던 중에 청평사에 도착한 공주는 공주굴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아침 종소리를 듣고 뱀에게 절에 가서 밥을 얻어 올 테니 기다려 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동안 공주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던 상사뱀이 공주의 몸에서 떨어져 공주는 절에 올라갔다. 마침 절에서는 가사불사를 하고 있었는데 공주는 공주탕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가사에 서너 바늘을 뜬 다음 법당에 들어가서 염불을 하고 있었다.
기 다리다 지친 상사뱀이 공주를 찾아 정문을 들어가려 할 때 뇌성벽력과 함께 소나기가 쏟아져 물에 떠내려가고 말았다. 후세 사람들은 이 문을 회전문이라 부르게 되었다. 공주가 밥을 얻어 동굴로 돌아와 보니 상사뱀이 죽어 폭 포에 떠 있었다. 공주는 시원하기도 하고 가련하기도 하여 청년의 화신인 상사뱀을 묻어 주고 이 사실을 본국에 알렸다.
당나라 태종은 재상 저수량에게 공주의 혼인 때 쓰려고 비축해 두었던 금덩어리 세 개를 주어 화려한 법당 을 세우게 하였다. 저수량은 금 한 개로 법당과 공주 이궁 및 저수량 봉교서비를 세우고 또 한 개는 장차 중건할 때 쓰라고 어디에 묻었으며 나머지 한 개는 공주의 귀국 여비로 주고 떠났다. 공주는 구성폭포 위에 삼층석탑을 세 워 부처님 공덕을 찬양하고 귀국하였다. 그런 이유로 이 탑을 공주탑이라고 한다.
이로 말미암아 신라와 당나라는 급속히 친밀해져 삼국통일에 큰 기여를 하였다고 한다. 이외 다양한 내용으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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