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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각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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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각배치도

전각(殿閣)이란 전당합각(殿堂闔閣)의 줄임말로 주로 한국의 전통 건축물을 지칭한다.

조선시대의 건물은 지을때부터 용도와 권위가 있어 전,당,합,각,제,헌,루,정(殿, 堂,闔,閣,齋,軒,樓,亭)의 순서로 서열에 매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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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원기(文殊院記)더보기+


문수원기는 1125년에 이자현이 세상을 뜨고 5년이 지난 1130년 8월 고려 인종으로부터 진락공이란 시호를 받았는데, 그 3개월 후인 같은 해 11월에 세워진 비이다.

비의 앞면은 청평사 창건과 중창, 이자현의 행적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고려 중기 문장가인 김부철(金富轍)이 짓고 대감국사 탄연(坦然)이 썼다. 비의 뒷면은 이자현을 추모하는 제문(祭文)으로 대각국사 의천(義天)의 제자인 혜소(慧素)가 짓고 역시 탄연이 썼다. 이 비문은 간화선(看話禪)과 굴산문(崛山門)의 법맥 등 고려시대 불교사, 사상사, 서예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조선 순조년간(1801∼1834)에 편찬된 『춘천읍지』에 의하면 문수원기는 글자가 벗겨지고 떨 어진 채로 절 앞에 서 있다고 되어 있다. 1914년 훼손이 심하자 극락전으로 옮겨 보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 이미 비문의 절반 이상이 멸실된 상태였다고 한다. 해방 이후에는 청평사가 북위 38°선의 경계선상에 있었기 때문에 주지승이 남한과 북한에 의하여 자주 연행되어 사상 조사를 받는 사태가 발생하자 부인이 부처님의 가피가 없기 때문이라면서 극락전을 불태우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다시 피해를 입은 문수원기는 현재의 대웅전 자리에 있던 요사에 옮겨 보관하게 되었다. 그러나 6‧25 전쟁 때 요사가 다시 불에 타면서 문수원기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 후 1968년 현재의 대웅전 자리에서 문수원기의 비편이 발견됨으로써 문 수원기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고 1985년 5월 25일에는 대웅전 터를 발굴하던 중 일부의 비편이 새로 확인되었다. 그 후 문헌, 탁본 등의 비교 분석 작업을 통해 2008년에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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