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8-11 09:21
풀어 쓴 전생 설화 - 제1지 선색녹왕
 글쓴이 : 무이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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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께서 옛날 조달과 함께 금파국의 칠향산에 머물고 계셨다. 산중에 숨어 짐승의 몸으로 변하여 함께 녹왕(鹿王)이 되었으니, 하나는 선색녹왕이고, 또 하나는 악색녹왕이었다. 그들은 각각 오백의 권속을 거느리고 배가 고프면 산봉우리의 부드러운 풀을 뜯어 먹고, 목이 마르면 시냇물을 마셨으며, 자유로이 수행하며 다른 짐승들을 교화하고 있었다.
  하루는 금파국의 임금이 무더운 여름 날 군마를 거느리고 성 밖으로 나와 사냥을 하던 중 칠향산 아래에 이르러 사방으로 숲으로 에워싸인 산을 문득 바라보니 산새와 털이 난 짐승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 때 사람의 기척을 듣고 많은 사슴들이 놀라고 당황하여 달아날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선색녹왕이 여러 사슴들에게 위로하며 말하였다.
   겁내지 말라. 내가 마땅히 너희들을 구원할 것이니라.”
   선색녹왕은 금파국의 임금 앞에 이르러 앞발로 땅을 두드리며 말하였다.
   저는 산중에 있는 짐승의 몸으로 우둔하오나 대왕께서는 우리를 잡아 무엇에 쓰려고 하십니까?”
   선색녹왕의 말을 듣고 임금이 군졸들에게 명령하였다.
   조심해라, 활을 쏘지 말라.”
   그리고 임금은 선색녹왕에게 말하였다.
   어찬에 쓰이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나는 오직 산중의 진미를 가장 좋아하므로 짐이 사냥하여 어찬을 장만하고자 하느니라.”
   임금의 말을 듣고 선색녹왕이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좋은 말씀입니다. 저는 산중에 있는 짐승으로 대왕께서 다스리는 영토에 머물며 수초를 먹고, 생명을 보존하고 있는데, 어찌 감히 명을 어기겠습니까! 그러나 천 여 마리의 사슴을 일시에 모두 죽여 없애 버린다면 화창하고 더운 날 산뜻한 기분을 느끼지 못하실 것입니다.
원하옵건대, 대왕께서는 잠시 군마를 멈추시고 환궁을 하신 다음 여러 목숨을 놓아 주십시오. 그렇게 하신다면 사슴의 무리가 오백 마리씩 두 무리로 나누어져 있는데, 차례로 돌아가면서 날마다 한 마리씩 이른 아침에 임금님의 명을 받들어 어찬을 보내는 것을 조금도 어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임금은 선색녹왕의 말을 듣고 옳다고 생각하여 흔쾌히 생각하고 곧바로 군마를 거느리고 궁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에 선색녹왕의 약속대로 사슴 한 마리가 스스로 들어와 두 발로 땅을 두드렸다.
   임금이 크게 기뻐하며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산중에 있는 짐승들일지라도 이와 같이 충의와 예절이 있느니라.”
   그리고 유사에게 명령하여 사슴을 잡아 어찬을 장만하고, 일주일 동안 일곱 마리의 사슴이 들어섰다. 그리고 팔 일만에 제비를 뽑아 악색녹왕의 무리 가운데 어미사슴 한 마리가 궁중으로 가게 되었다.
   어미사슴이 악색녹왕에게 애원하며 말하였다.
   소록의 배에 새끼 한 마리를 잉태하여 장차 낳게 되었으니, 바라옵건대 새끼를 낳은 후에 임금님의 명을 받고자 하오니 부디 헤아려 주시옵소서.”
   어미사슴의 말을 듣고 악색녹왕이 말하였다.
   벌써 네가 궁중으로 가기로 정하여졌는데, 누가 너의 목숨을 대신하겠느냐?”
   악색녹왕이 완강하게 거절하자 어미사슴은 선색녹왕의 처소를 찾아갔다.
   어미사슴이 선색녹왕에게 말하였다.
   선색녹왕이시여, 저의 몸에 새끼를 배어 아직 낳지 못하였으므로, 원하옵건대 두 목숨을 구제하여 주시옵소서.”
   어미사슴의 말을 듣고 선색녹왕이 말하였다.
   너의 무리에도 작은 배려가 없거늘, 남의 무리에서 그렇게 하겠느냐? 그러나 나의 몸으로 너의 두 목숨을 대신하여 주겠노라.”
   그리고 선색녹왕은 무상게 한 수를 지어 읊었다.
 
만상 가운데
누가 이 주인이던가
천당과 지옥이
모두 마음뿐이로다
 
중생이 저절로
윤회의 길을 걸음함이여
죽음이 닥쳐옴에
누가 너를 대신하랴
 
자식과 어머니가
서로 사랑함이여
오늘 아침 모자간에
같이 죽게 되었구나
내가 너를 대신하여
황천길을 걸어 볼까
내일 아침 이른 새벽
저 임금을 가서 보리라
 
   이와 같이 게송을 읊고 나서 9일이 되던 날 아침에 선색녹왕이 금파국의 궁중에 다다르게 되었다.
   임금은 크게 화를 내며 선색녹왕에게 물었다.
   무슨 이유로 어제 사슴 한 마리를 보내지 않고, 오늘 아침에 네가 직접 왔느냐?”
   선색녹왕이 임금에게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황송하오나 부득이 사정이 있어 그렇게 되었으니, 제가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제 악색녹왕의 무리에서 차례가 되어 어미사슴 한 마리가 뽑히게 되었습니다. 어미사슴은 자신이 죽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라 어찌할 수 없는 일이지만, 세상에 나와 보지 못한 새끼 사슴이 태중에서 그냥 죽게 되니 어미의 심정으로 차마 견디기 어려워 태어날 때까지 차례를 바꾸어 달라고 악색녹왕에게 애원하였으나 규칙을 어지럽게 할 수 없다고 하여 들어주지 않자 저에게 찾아와 사정을 하였습니다. 제가 어미사슴의 말을 듣고 생각하여 보니 악색녹왕의 무리에도 오백 마리의 사슴이 있지만 배려하는 자가 없는데, 저의 무리에서 남의 목숨을 대신 할 자가 있겠습니까? 할 수 없이 저의 한 목숨을 희생하여 그 모자의 목숨을 살리고자 이렇게 대신 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어제의 명을 받들지 못한 것은 이와 같은 사정으로 그 일을 처리하느라 날이 저물어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국왕은 선색녹왕이 호소하는 말이 너무 측은하여 크게 감응을 받고 찬탄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 짐승들도 목숨을 구제할 참 뜻을 가졌으니, 어찌 범상한 무리가 아니겠는가! 반드시 성현이 그 속에 숨어 있어 방편으로 이와 같이 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임금은 선색녹왕에게 맹세하며 말하였다.
   오늘부터 영원히 사슴고기를 먹지 않으며, 다시 사냥을 하지 않을 것이다. 너를 놓아 칠향산으로 돌려보낼 것이니 자유로이 노닐도록 하여라.”
   대왕은 칠향산을 어록산이라 하고, 녹야원으로 이름을 변경하여 방을 붙여서 관리나 백성들이 다시 녹야원에 들어가 사냥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선색녹왕은 악색녹왕과 더불어 사슴들을 거느리고 산중에 머무르며 영원히 두려운 마음을 갖지 않고 자유롭게 노닐며 수행을 하였다.
   선색녹왕이 임종시에 사슴의 무리에게 말하였다.
   배가 고프면 산봉우리의 풀을 뜯어 먹고, 목이 마를 때에는 시냇물을 마시고 본심을 지켜 항상 이곳에 머무르며 다른 곳으로 가지 말도록 하여라.”
그리고 선색녹왕이 홀연히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 때 아홉 빛깔을 가진 선색녹왕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오백 권속은 오백 나한이며, 악색녹왕과 오백 권속은 조달이었다.